금성대군은 누구? 단종 복위 꾀한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1426~1457)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단종의 작은아버지다. 두 번이나 단종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잃었고, 영주 순흥에는 그를 신령처럼 모신 드문 제단(사적 영주 금성대군 신단)이 남아 있다.
- 결론: 금성대군(1426~1457)은 조선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다. 단종에게는 작은아버지, 세조에게는 동생이 된다
- 두 번의 복위 시도: 1456년 사육신과 함께 단종을 다시 왕위에 올리려다 순흥으로 유배됐다. 이듬해 순흥에서 다시 일을 꾸몄지만 미리 들켜 함께한 사람들과 죽임을 당했다
- 226년 뒤 복권: 1683년 숙종 때 순흥부가 다시 세워지고 금성대군과 함께 죽은 이들의 신분이 회복됐다
- 왜 중요? 조선에서 사람을 신격화해 세운 제단은 극히 드물다. 영주 금성대군 신단(사적)은 그 드문 예로, 지금도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연표로 보는 금성대군
| 때 | 일 |
|---|---|
| 1426년 |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남 |
| 1456년(세조 2년) |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추진하다 순흥으로 유배 |
| 1457년 | 순흥 부사 이보흠, 지역 선비들과 다시 복위를 계획했으나 발각돼 죽임을 당함. 순흥부도 폐지 |
| 1683년(숙종 9년) | 순흥부 다시 설치, 관련자들의 신분 회복 |
| 1719년(숙종 45년) | 순흥 부사 이명희의 요청으로 사건이 있던 옛터에 제단 설치 |
| 1742년(영조 18년) | 경상 감사 심성희의 요청으로 제단 정비 |
제단 셋, 品자 모양
영주 금성대군 신단에는 돌로 쌓은 제단 3개가 '品(품)'자처럼 놓여 있다.
| 자리 | 모신 사람 |
|---|---|
| 앞쪽 동쪽 | 순흥 부사 이보흠 |
| 앞쪽 서쪽 | 함께 죽은 선비들 |
| 가운데 뒤쪽 | 금성대군 (신단) |
당시 순흥 사람들은 금성대군을 신령처럼 받들었다. 그래서 그의 제단에는 '신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80년 무렵에는 제단 앞에 제사를 지내는 재청과 제사를 준비하는 주사를 지어 지금의 모습이 됐다. 2011년 이름이 '금성대군신단'에서 '영주 금성대군 신단'으로 바뀌었다.
왜 18세기에 제단이 생겼나
제단이 세워지고 정비된 18세기는 여러 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쓰려는 탕평 정치가 활발하던 때다. 국가유산청은 이 제단이 왕에 대한 의리를 다시 강조하던 당시 정치 분위기와 깊이 관련돼 있다고 설명한다.
단종의 마지막을 지킨 사람은 또 있다.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둔 고을 호장 이야기는 엄흥도는 누구?에 있다.
한 줄 평왕이 된 형 대신 쫓겨난 조카 곁에 섰던 사람이다. 영주 순흥에 가면 조선에서 보기 드문, 사람을 신처럼 모신 제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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