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옥중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일본에서 돌아왔다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쓴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가 일본에서 환수됐다.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여덟 글자의 뜻과 진본으로 본 근거, 하얼빈 의거(1909년 10월 26일)부터 순국까지를 정리했다.
- 결론: 안중근 의사가 순국 며칠 전 뤼순감옥에서 쓴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가 일본에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환수해 8월 13일 처음 공개했다
- 무슨 뜻: 만국공법, 곧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말이다. 힘이 질서를 정하던 제국주의 현실을 꼬집은 표현이다
- 진본 근거: 왼쪽 아래에 안 의사 유묵의 상징인 손도장이 찍혀 있고, “경술년(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라는 글이 있다. 서체와 손도장이 보물로 지정된 다른 유묵과 일치했다
- 왜 중요? 뒷면에 남은 글로 처음 가진 사람과 전해진 길까지 확인되는 드문 유묵이다
의거에서 순국까지
| 때 | 일 |
|---|---|
| 1909년 10월 26일 |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 |
| 1910년 2월 | 뤼순감옥에서 사형 선고 |
| 1910년 3월 |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쓰고(미완성) 이 유묵을 남김 |
| 1910년 3월 26일 | 순국 |
안 의사는 의거 뒤 자신이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정당한 전쟁 행위를 했다며 국제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다.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 살인죄로 기소해 사형을 구형했다. 국제법에 따른 동양 평화를 주장하던 그가 '국제법은 대포만 못하다'고 쓴 배경이다.
이 말은 19세기 일본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에서 나왔다. 열강이 국제법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힘의 논리로 움직이던 당시를 비판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뤼순감옥 소장이 가지고 있었다
유묵 뒷면에는 하얼빈 의거부터 사형 집행까지의 경과, 처음 가진 사람, 표구한 까닭이 먹으로 적혀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뤼순감옥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가지고 있던 것을 '평문광생 뇌협일인'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인물이 물려받아 표구해 보관했다. 구리하라는 안 의사가 갇혀 있는 동안 인간적으로 배려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 항목 | 내용 |
|---|---|
| 크기 | 전체 세로 196.8cm, 가로 44.8cm |
| 서체 | 행서를 바탕으로 해서·초서를 섞어 단숨에 썼다 |
| 특징 | '萬(만)'자를 초서로 쓴 방식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유묵에서도 보인다 |
| 환수 | 2025년 5월 존재 확인, 같은 해 11월 국내 반입. 복권기금 지원 |
공개 때는 2022년 보물로 지정된 유묵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도 함께 나왔다. 같은 1910년 3월에 뤼순감옥 간수과장에게 써 준 글로, '날마다 고상하고 맑은 이야기를 나누던 분'이라는 뜻이다.
한 줄 평평화를 말하던 사람이 '법은 대포만 못하다'고 써야 했던 순간이다.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날에 이 여덟 글자를 함께 떠올려 볼 만하다.
이 글이 도움이 됐나요?